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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미디어 리뷰

가버나움, 자신을 도운 자인의 이야기

by 림뽀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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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하늘은 자신을 돕는 자를 돕는다.

 

라힐을 만나기 전까지 시종일관 불행한 표정이었던 자인

 

가버나움의 주인공인 자인은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는 12세 소년이다. 그는 어른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인간성을 잃어갈 때, 사랑하는 사람을 최선을 다해 지킨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랑하는 이들을 포기할 때, 그 부조리함을 세상에 알린다. 결국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 자인을 돕는다. 각박한 세상에서 자인은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가 행동한 결과로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게 되었다. 

 

 

자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챙길 줄 안다. 

 

제대로 챙긴다는 것은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삶이 버거워 자신의 자식에게도 하지 못하는 것을 어린 자인은 자신보다 약한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동생이 생리를 시작했을 때, 부모보다 더 빨리 그 사실을 알아채고 동생에게 생리대를 구해서 준다.

 

자인과 동생의 행복한 한 때

 

자인의 동네에서 어린 여성이 생리하는 것을 들키면 나이 많은 남자에게 강제로 보내진다. 그래서 자인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 생리를 숨기고 동생을 노리는 남자에게 대항한다. 동생과 도망 가려는 계획도 세운다. 10년 동안 동생을 키운 부모보다 동생을 더 잘 챙기고 보호한다. 어른들의 선택에 대항하기 부족한 힘 때문에 결국 동생은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 버린다. 그리고 그런 부모에게 화가 나 도망친 곳에서 자인은 라힐과 아기 요나스를 만난다. 

 

 

자인은 라힐의 아기 요나스를 힘닿는 데까지 챙긴다.

 

놀이공원에서 일하고 있던 라힐이 자인을 발견한다.

 

오갈 데 없는 자인을 거두어 준 것은 불법체류자 라힐이었다. 라힐과 함께 지낸 지 며칠 후, 일을 나갔던 라힐이 불법 이민자로 잡혀 들어가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언제 라힐이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인은 끝까지 요나스를 챙긴다.

 

오갈 데 없이 요나스와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돈을 줄테니 아기를 달라는 남자의 유혹도 뿌리치고 자신의 몸집에 버거운 요나스를 질질 끌고 다닌다. 집까지 빼앗긴 상황에서 아기를 더 이상 돌보기 힘들어지자 길가에 두고 떠나 보려고도 하지만, 자인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버리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라힐의 지인이라고 주장한 남자에게 요나스를 맡긴다. 그 후 자인은 그 사람을 신고하고, 아기는 엄마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다.

 

 

자인은 동생과 요나스를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요나스에게 뽀뽀해주는 자인.

 

자식을 행동이 아니라 마음으로만 사랑한 것은 자인의 부모이다. 그들은 자인의 동생의 죽음에 슬퍼하지만, 새로운 아이가 생겼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준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자인은 부모를 고소하기로 한다. 자신과 같이 불행한 아이가 더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자인의 부모가 울면서 외친다.

 

법원에서 자인의 부모가 항변하는 모습

 

"당신들이 내 처지에 놓여 보지 못해서 그래요.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나의 부모가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사는 방법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배운 삶의 방식은 그게 다인 것이다. 가난은 잔인하다. 풍족했다면 유지할 수 있었을 자식에 대한 사랑과 보살피고자 하는 욕구를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부모에게 딱 이 정도까지만 공감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옳지 않음을 자인을 통해 보인다. 피해자로 살아가며 자식을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그들을 지키는 행동이 옳다고 말이다. 어린 자인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은 없지 않냐는 것이다. 

 

자인은 부모가 잘못한 것이라고 똑똑히 주장한다. 자신과 같은 아이를 또 만드는 이들을 고소한다.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고 관습을 거스르면서 얻는 것은 자신을 위한 새로운 미래이다. 

 

 

자인이 적극적으로 행동해서 바뀐 것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1. 동생의 복수를 했다. 

 

자인의 부모는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해 슬퍼하지만 결국 체념한다. 그리고 대체재를 찾는다. (새로운 아기) 반면 자인은 동생의 죽음을 잊지 않으며 죽음을 초래한 그의 남편을 찾아가 칼로 찌른다. 그 행동의 결과로 소년원에 갇히지만, 억울하게 먼저 가 버린 동생의 복수를 하는 동시에 죽음을 주변에 알리는 기회가 된다. 부모는 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만 자인은 문제에 정면 돌파한다. 그리고 미래에는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자인이 어린 여자아이들이 늙은 남자에게 결혼하여 생기는 문제를 공론화시킴으로써 같은 문제로 사망하는 일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2. 라힐과 요나스가 만날 수 있게 했다. 

 

불법체류로 인해 입 옆에 점을 찍는 라힐

생활고에 시달리던 자인은 결국 요나스를 떠나게 된다. 그럼에도 끝까지 요나스가 마음에 걸린 자인은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요나스를 데려 간 미심쩍은 남자부터 신고한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로 라힐은 아들 요나스와 함께 살 수 있게 된다.

 

 

3. 방송에 나와 변호사를 만났고 법원에 갈 수 있게 됐다. 

 

저를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감옥에 있는 동안 TV에서 아동 학대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는 것을 듣는다. 만약 감옥에서 자인이 "어차피 내 인생 다 끝난 마당에 인생이 뭐 같은 거 TV에서 말해서 뭐해"라고 체념했다면 자인에게 새로운 인생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 바닥 같았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이 부모였다는 것을 시원하게 말해버림으로써 자인은 자신의 처지를 공공연하게 비관한다. 이는 체념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오히려 문제를 인지해달라는 호소에 가깝다. 그리고 그 호소에 공감한 한 변호사가 자인이 자신의 부모를 고소할 수 있게 돕는다. "하늘은 자신을 돕는 자를 돕는다"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4. 신분증이 생겼다.

 

신분증 사진을 찍는 거니 이제 웃어봐.

 

가장 중요한 신분증이 생겼다. 아마도 자인의 부모도 신분증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만드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자인의 동생은 제대로된 치료도 못 받고 죽는다. 신분증은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자인은 이제 제대로 된 직업도 얻을 수 있고 출국도 할 수 있다. 원하는 곳에 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자신의 힘으로 받아냈다. 

 


 

자인은 행동하는 사람이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에게 미래가 주어졌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체념한 부모는 본인과 자식을 지키기 못하고 똑같은 불행한 삶만 살뿐이었다.

 

 

모든 것이 다 부모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까지도 가난하게 만든 환경의 잘못이 매우 크다. 만약 그들이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불행한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너무 적은 양의 파이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 하니 전쟁 같이 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잘못을 한 건 그 나라를 가난하게 만든 자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유모자 대용으로 만든 스케이트 보드 유모차에 요나스를 태우고 다닌다.

 

이런 영화가 그들에게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 영화일까? 아니면 오히려 기분이 나쁜 영화일까? 그들의 상황에 놓여본 적도 없으면서 잘못을 들추는 것이 맞는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자인과 같이 행동하는 자가 없다면 악습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버나움의 가치는 자인의 부모와 같은 사람들을 심판대에 세우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자인과 비슷한 상황에 놓은 아이들의 상황을 알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의 불합리함을 알리는 역할 또한 크다. 불편한 진실을 한 아이의 인간다움을 통해 알려주는 영화이다. 가버나움 같은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지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노르웨이 간 자인,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길.

 


"가버나움, 자신을 도운 자인의 이야기"

20.03.24, 림뽀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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