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2 사실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 맛집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넷플릭스 자체 제작 다큐멘터리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 국내에서 수입하여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의 폭보다 훨씬 넓은 주제의 다큐들이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가 바로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이다. 15분~20분 내외에 짧은 영상으로 출퇴근하면서 부담 없이 간단한 지식을 쌓기에 좋은 다큐이다. 오늘은 그 시리즈 중, "인종 간 부의 격차"라는 넷플릭스 다큐를 리뷰해 보려 한다.
[Netflix]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시즌 1, "인종 간 부의 격차"
미국 백인들에게 부를 가져다 준 것은 무급 노예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들이었다. 표면적으로 미국은 인종 차별을 철폐했지만 흑인들에게 주어진 경제적, 사회적 시작 지점까지 평등하게 바꾼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국가 단위의 인종 차별로 그들에게 어떠한 파이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차별을 유지한 방법은 부동산이었다.
흑인 주택 소유 박탈 (~'90)
1970년
평균 주택 소유율: 62.9%
흑인 주택 소유율: 41.6%
- United States Census, Current Population Survey
미국 가계 자산 중 주택 자산은 2/3를 차지한다. 미국 백인으로 태어나 물려받을 집이 있었다면 앉아서 버는 돈이 몇 억대이다. 이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나, 흑인은 차별로 인해 과거 주택을 구매하기 매우 "어려웠다". 정부에서 위험하다고 판단된 지역에는 대출을 해주지 않았는데, 위험한 지역이라 함은 흑인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흑인이 동네에 이사 오게 되면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백인들은 흑인에게 집을 팔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흑인이 백인 동네의 집을 알아볼 때 집이 팔렸다고 거짓말을 쳤다. 또한, 정부는 흑인 거주 지역에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경제적 차별까지 이어졌다.
사회적 차별이 경제적 차별로 이어지는 원인이 인종 차별 때문이라는 것은 충격적이다. 외국인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한국 또한 인종 차별이 있지만, 인종 차별에서 파생적으로 생긴 경제적 차별은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다. 한국은 오히려 경제척 차별로 인한 사회적 차별이 눈에 띄는 사회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태어난 인종 때문에 물려받는 것이 없고 심지어는 개척할 수조차 없다니, 정말 끔찍하다.
대출로 인한 피해 ('90~)
비유량 담보대출 (Subprime Mortgages)을 받은 비율
백인: 26.1%
흑인: 52.9%
- United States Census, Current Population Survey
90년대에 들어서 미국 정부는 담보 대출 시장을 열었고, 흑인 주택 소유율이 증가했다. 누구나 평등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인의 약 두 배나 되는 흑인이 비우량 담보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비우량 담보 대출은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시간이 흐를 수록 낮은 금리에서 높은 금리로 대출을 갚아야 한다.
2008년 경제 위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무책임한 담보 대출로 인한 것이다. 흑인은 이로 인해 53%의 자산을 잃었다. 안정적인 중산층의 삶을 누리기 위해 집을 원하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대출을 해주고 덤탱이를 쓰게 한 것이다. 피해를 본 것이 흑인만은 아니겠지만 취약 계층에 더 많이 놓인 그들에겐 엄청난 비극이었다. 그리고 이 사태로 인해 빈부격차는 더 벌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져 손 쓸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른다. (이르고 있고, 더욱 이를 것이다)
대출 상품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집을 산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돈에 눈이 먼 이들이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전하지 않았고,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이 필요하며 경제 교육이 부족한 이들에게 피해가 간 것이다. 먼저 이 사태를 파악한 이들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돈을 벌거나 빠르게 대처해 적어도 돈을 잃지 않았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 관한 영화 "빅쇼트"를 추천한다) 무책임한 상품을 만들어 이익을 취한 자들이 벌을 받지 않고 무고한 사람들이 벌을 받은 것이다.
기득권이 본인의 부와 세력,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기득권은 잔인할 정도로 비기득권을 짓밟고 놔주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이 그런 것일까?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부의 세습과 기득권 유지의 폐해가 없어질 수 있을까?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국민 서바이벌에 관한 넷플릭스 드라마, 3%가 생각난다.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나다.)
내가 만약 기득권이라고 한다면 (이 다큐멘터리의 기득권 층으로 나온 미국 백인이라고 한다면) 흑인에게 부동산 획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부의 축적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고 죄책감이라도 느꼈을까. 아마 이 모든 게 차별이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원래 차별을 당하지 않는 쪽은 차별의 존재를 모르며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 뒤집어 엎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기득권들의 거짓말 대잔치가 다시 벌어질 것이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행복한 세상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E.O.D
'미디어 > 🎥 미디어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플] 왜 성범죄 피해자는 나중에 신고할까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리뷰) (0) | 2020.08.02 |
---|---|
[넷플] 여자가 다한 "셀프 메이드: 마담 C. J. 워커" 후기 (5) | 2020.03.27 |
가버나움, 자신을 도운 자인의 이야기 (1) | 2020.03.24 |
1월 콘텐츠 소비 후기 (2019~2020) (1) | 2020.03.19 |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왜 버림받았는가 (0) | 2020.03.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