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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창고/☀️ 일상의 생각

가족이라는 감옥을 탈출한 여자들 (언오소독스, 완벽한 아이 후기)

by 림뽀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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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와 데버라, 가족이라는 감옥을 탈출하다.

지난주에 "완벽한 아이"를 읽었다. "완벽한 아이"의 화자인 모드 쥘리앵과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의 데버라 펠드먼이 겹쳐졌다. 태어나자마자 모드는 아버지에 의해, 데버라는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 억압당한다. 두 사람은 모두 여성이며, 성인이 되었을 때 감옥과 다름없는 가족을 탈출한다.

 

억압적인 사회는 규율에 집착하고 개인의 생각을 제한한다. 자유로운 생각은 위험하다. 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규율에 의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의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지키기도 힘든 이 모든 규율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왜 지켜야만 하는 것인지"라는 생각이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태어난 세상을 지배하는 개념을 뿌리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이비 교주들이 그러하듯 "언오소독스"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나 "완벽한 아이"의 아버지, "디디에 선생"이 구축한 공동체 모두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다. 그런 환경에서 체제에 저항하는 자신만의 생각을 키워나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탈출은 더더욱 어렵다. 한 번도 겪지 못한 외부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다.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은 외부 세계가 더럽고 위험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탈출까지 감행할 수 있었던 생각의 자양분은 바로 책이었다. 두 사람은 허가되지 않은 '바깥세상 책'을 몰래 읽었고, 책에 펼쳐진 다른 사람의 경험에 매혹된다. 그리고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깨닫는다. 다른 세상은 그들의 고향보다 자유롭다. 사람들은 감정을 마음껏 분출한다. "어쩌면 우리 아빠가, 내가 사는 세상이 틀렸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청소년 시기를 거쳐 공고해져 간다. 의심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탈출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가족이라는 감옥에서의 생활은 실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혹하다. 그만큼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했을 때 독자가 느끼는 카타르시스도 크다. 처음 읽었을 땐 "말도 안 돼, 같은 시대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라는 놀라움과 "이곳에서 미치지 않고 탈출해서 삶을 이어가는 화자가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드와 데버라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전쟁"

모드와 데버라의 공통점은 "독서를 통한 다른 세상의 경험" 덕분에 탈출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가해자가 받은 상처가 비슷하다. 모드는 1957년생이고, 데버라는 1986년생이다. 모드의 부모와 데버라의 조부모는 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그리고 전쟁은 상처를 남겼다. 피해자가 전쟁의 원인을 내재화했을 때 발생한 문제가 모드와 데버라에서 터져 나간다.

 

먼저, 유대인인 데버라의 조부모 세대는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그들은 유대인이 고통을 겪은 이유가 규율을 철저히 지키지 않고 외부인과 섞여 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고통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고 종교의 규율을 모두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규율이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지만 구성원 사이에 만연한 공포가 모든 것을 인정하게 한다.

 

모드의 아버지인 디디에 선생은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다. 그러나 "전쟁의 시대"를 살아온 탓에 전쟁에 대한 공포가 뼛속 깊이 서려있다. 딸인 모드가 수용소에 잡혀갔을 때에는 살아남을 수 있는 '완벽한 아이'로 키우는 데 사력을 다한다. 오죽하면 딸에게 5개가 넘는 악기를 가르치는 이유도 수용소에서 간수들이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악가를 마지막으로 죽인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는 세계 2차 대전 때 유대인의 탈출을 도왔다. 유대인의 비참한 현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약육강식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전쟁의 공포가 그가 미치게 만들었다. 

 

두 가해자 모두 자신이 피해자가 된 이유를 가해자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서 찾았다. 만일 가해자에게 모든 탓을 돌렸다면 그저 전쟁 전으로 돌아가, 그때와 똑같이 자유롭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샤머니즘 수준의 신앙에 목을 매고 자기 자신과 후손들에게 비상식적인 규율의 멍에를 씌운 것이다.

 

그런데 모든 가해 사건에서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탓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피해자는 내가 그때 그 자리에 없었다면, 내가 가해자와 엮이지 않았더라면, 내가 더 강했더라면 등, 내가 어떻게 했으면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할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 새겨진 공포는 건강한 사고를 방해한다. 전쟁은 세대를 거듭하며 피해자와 그 후손에게 고통을 안긴다. 전쟁의 여파가 한 세대에서 끝날 것이란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다.

 

 

 

언오소독스 : 밖으로 나온 아이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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