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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창고/☀️ 일상의 생각

중랑천에서 수달을 마주치다..!

by 림뽀 2022.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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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5일 수요일, 중랑천으로 야간 산책을 나갔다. 세종대에서 5~10분쯤 걸어가면 중랑천 산책길이 있다. 중랑천은 물살이 세지 않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졸졸, 잔잔하고 규칙적으로 흐른다.

 

평소와 같이 평온한 물의 흐름을 즐기던 중, 냇물이 봉긋하게 솟아올라 물의 흐름이 바뀌었다. 유심히 바라보니, 이게 웬 걸? 예상치 못한 동물이 있었다. 그 동물은 곤충도 새도 아닌 포유류로 보였다.

 

잠깐 생각해보면 도시 한가운데서 마주칠 수 있는 포유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포유류는 (애완동물을 제외하고) 고양이와 쥐이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옆에 있던 친구는 뉴트리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물 가까이 가길 꺼린다. 그리고 쥐라고 하기엔 몸통이 너무 길었다.

 

중랑천에서 수달이 얼음위로 점프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엥 저거 수달인데?"

"수달은 무슨 수달이야? 아니야 수달."

"그럼 해달인가?"

"해달은 바다에 있는 거 아냐?"

 

내 말을 믿지 못한 친구는 인터넷에 "한강 수달"을 검색해봤다. 놀랍게도 2020년부터 한강에 수달이 나타났다는 기사와 블로그 글이 꽤 자주 올라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말 뉴트리아도, 고양이도 아닌 수달을 본 게 맞았다. 뉴트리아도 실제로 본 적 없는 우리의 눈앞에 수달이 나타나다니. 그것도 어두운 밤 중에, 도시 한가운데 있는 작은 하천에서 말이다! 한강에서 천연기념물인 수달을 직접 목격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수달은 굉장히 귀엽게 생겼다. 우리가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는 걸까?

 

 

"한강에서 수달과 눈이 마주쳤어요!"

서울환경운동연합 카카오톡 메시지로 시민 한 분이 제보를 해주셨습니다. “한강에서 낚시를 하다가 수달과...

blog.naver.com

 

수달이 한강에서 살고 있긴 하지만, 개체수가 아직 많지 않다. 여전히 천연기념물 제330호,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이라고 한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다양한 시민단체와 환경운동가가 수달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한강 수달을 위해 두 팔 뻗고 일하는 사람이 있단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보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수달을 만난 수요일에 호들갑이란 호들갑을 다 떨었다. 우리가 수달을 보고 나누었던 대화는 이러했다. 지금 보니 대화가 아니라 거의 내가 던졌던 질문이다.

 

- 이 추운 겨울에 수달은 물속이 춥지 않을까?

- 밤에 잠은 어디에서 잘까?

- 혼자서 외롭지 않을까?

- 개체수가 너무 적어서 짝짓기할 짝이 부족하면 어떡하지?

 

- 환경 오염이 심각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는 한강에 수달이 더 많이 살았겠지? 환경오염은 정말 나쁘다.

- 2020년쯤부터 수달이 한강에 돌아온 이유가 뭘까? 물이 여전히 더러워 보이던데.

- 혹시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한강을 덜 방문해서 물이 깨끗해진 걸까?

 

- 야생의 동물이 동물원의 동물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 동물원의 동물이 행복해 보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공간이 좁아서? 직접 사냥을 하지 않아서? 본능을 죽이고 살아서?

- 인간은 편리함을 위해 동물원의 동물처럼 본능을 죽이고 분업화하며 스스로를 가축화한 게 아닐까?

- 인간에게도 수달처럼 사냥 본능이 있지 않을까?

-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수달처럼 자신이 먹을 것을 직접 사냥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두 가지가 일조량과 운동량이라던데, 사냥을 하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 사냥을 직접 하게 되면, 내가 내 손으로 먹을 것을 잡는다는 성취감을 느끼니 일에서 오는 무의미함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자연과 생명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호들갑을 떠는 일은 즐거웠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시 한가운데서 수달을 마주친 놀라운 사건을 공유하고 싶었다. 친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달 gif를 올렸더니 한 사람이 뭘 그런 것 갖고 놀라냐는 댓글을 달았다. 원래 한강에 수달이 많다며 말이다.

 

하지만 자연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주로 좌뇌를 사용하며 정해진 답을 찾지만 그보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경이로움을 느끼는 일일 테다. 정혜윤 작가님이 고래에게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나는 수달에게 경이로움을 느꼈다. 수달의 생동감과 자유로움에서 감동을 받았다. 동물원에 있는 수달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인간이 살아야 하는 방향이 아닐까. 자유롭고 본능적으로 사는 삶 말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말이 떠오른다. "해답이 아니라 경이로움을 즐기라." 나는 지칠 때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어디선가 고래가 숨 쉬고 있다. 지금 고래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 정혜윤 <아무튼, 메모> p. 96

 

그날 수달은 강 하류를 따라 빠르게 내려갔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타나면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30분가량 물고기를 사냥했다. 한 자리에서 5마리 정도는 먹은 것 같았다. 중랑천에 물고기가 많은가 보다.

 

사냥이 끝나고 수달이 강 하류로 내려갈 때 따라서 걸어 내려갔는데, 물살이 센 곳에서 더 이상 수달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수달과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어디로 갔니 수달아. 건강하게 살아야 돼. 새끼도 많이 낳고 맛있는 물고기도 많이 먹고살았으면 좋겠다. 또 만나는 날이 있길 바라. 언제나 널 응원할게. 내 앞에 나타나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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