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97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과는 달리, 테드 창 소설 중 가장 귀여운 이야기이다.
"블루 감마"라는 한 게임 스타트업은 성장하는 애완 인공지능을 만든다.
이 애완 인공지능들을 "디지언트"라 부르는데, 말을 할 수 있고 동물의 생김새를 따른다. 인간과 비슷하게 천천히 성장한다.
주인공인 애나는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던 경험을 살려 블루 감마의 디지언트 프로그래밍 방식에 조언을 주는 일을 하게 된다.
블루감마의 서비스는 출시 직후 큰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비스 구매자들은 디지언트가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만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용자의 관심이 급감하고, 수익성이 나빠진 사업 또한 끝이 보인다. 그러나 사육사 출신 "애나"와 디자이너 "데릭"은 키우던 디지언트에 애착을 갖고, 그들을 꾸준히 키우기로 한다.
하루는 디지언트가 거주하던 "데이터 어스"라는 공간을 소유한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을 진행한다. 그런데 애나와 데릭의 디지언트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주할 수 없다. 그들의 디지언트가 "구형 모델"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이 해당 버전의 디지언트를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몇 안 되는 구형 디지언트를 제외한 모든 디지언트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주하고, 구형 디지언트들은 데이터 어스에 갇혀버린다.
자식의 불행을 눈 뜨고 볼 수 없는 애나와 데릭는 디지언트를 새로운 공간으로 이주할 방법을 찾는다. 개발자를 구하지만, 큰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 안 되는 유저가 모은 돈으로는 택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방면으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중 하나는 "성인용 디지언트" 개발을 원하는 성인물 기업이었다. 그들은 디지언트에게 성적인 요소를 부여하고, 100% 디지언트가 원하는 인간/디지언트와만 관계를 맺도록 할 것이라 말한다. 만약 이 기능을 개발하도록 허락할 경우, 이주 비용을 지원해주겠다 한다. 그러나 애나는 디지언트가 성적으로 착취당할 수 있다 판단하여 거절 의사를 밝힌다. 디지언트가 성인 인간만큼 성적인 경험이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반면, 데릭은 그의 디지언트인 마르코와 폴로에게 그들의 의견을 묻는다. 이전에도 데릭에게 여러 차례 독립시켜달라 말했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디지언트의 자유 의지가 높아진다. 말도 잘 못하던 아이에서 주체성을 지닌 청소년까지 자라는 모습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살고자 하며, 성적인 존재가 되는 것에 불만이 없다. 데릭의 디지언트인 마르코는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독립된 성인으로 봐줘.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나는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어."
그래서 데릭은 성인용 디지언트 개발사에게 개발 권한을 내주고, 그의 디지언트들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한다. 애나는 데릭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결정은 되돌릴 수 없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디지언트는 인간 어린이처럼 성장 속도가 느리며,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다. 영화 A.I의 인공지능과 같이 인간보다 약자이며, 인간에게 유대를 느낀다. 인간 "부모"를 두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감정을 지닌 AI를 어떤 존재로 바라볼지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내가 데릭이었다면 마르코와 폴로가 해달라는대로 해줬을까? 사랑으로 몇 년을 키운, 자식과 같은 존재가 이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게 해달라고 요청한다면? 애나와 데릭이 디지언트를 독립시키겠다고 결정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디지언트에게 "성체가 되는 시기"가 없어서였다. 애나도 언젠가 자신의 디지언트를 독립시키겠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디지언트가 스스로 밥벌이를 하고 살도록 돕고자 디지언트를 교육시킨다.
나는 지금까지 자녀의 입장만을 겪어왔기 때문에, 나를 제약하는 부모님이 마음에 안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애나와 데릭, 즉,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본 자녀의 독립을 우화적으로 바라보니 더 이해하기 쉬웠다. 본질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부모도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가진 가치관이 달라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다.
테드 창의 소설이 뛰어난 이유는 뭘까. SF(Science Fiction) 소설 중 다수는 Science를 원하는 배경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데 사용할 뿐이다. 반면, 테드 창의 Science는 누구보다 탄탄하다. 과학적 배경지식과 엄청난 리서치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실제로 "있을 법한" 논리적인 배경을 만든다. Fiction(이야기)를 구성하는 솜씨와 그 안에 담는 메시지도 깊다.
구체적이고 탄탄한 과학적 설정에 비해 이야기가 짧다고 느껴지는 소설도 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나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모두 소재와 배경은 완벽한데, 이야기가 중간에 끊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훌륭한 소재와 배경을 가지고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줬으면 하는 내 바람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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