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노마드랜드"
책은 노마드의 고단한 현실과 그들이 진짜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다룬다.
책 "노마드랜드"의 저자인 제시카 브루더는 사회 정의 관련 저널리스트이다. 이 책은 현장 르포이며, 브루더가 직접 노마드 생활을 한 경험과 다양한 노마드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책 "노마드랜드"는 경제 위기에서 무너진 미국의 중장년층이 집을 포기하고 차를 집으로 삼는 노마드가 된 사회적인 배경과 그들이 견뎌야 하는 노동 환경의 부조리함에 초점을 맞춘다.
자본주의가 버린 패, 노마드가 되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답이 아니었단 걸 뒤늦게 깨달은 사람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버린 패이다. 은퇴 연령에 접어든 그들에게 패자부활전은 주어지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게임에서 승리하는 조건은 성실함과 노력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게임이며, 얼마나 열심히 공정하게 게임에 임했는지는 결과와 관련이 없다. 자본주의는 성문화 된 법칙 몇 가지만 지킨다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거치며 많은 미국 중산층이 자본주의 게임에서 낙오된다. 그들은 더 이상 집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지금껏 중산층으로 살기 위해, 집 한 채를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는지 후회하게 된다. 열심히 돈을 벌면 누구나 번듯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회의 암묵적인 룰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집을 버리고 노마드가 되었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승부가 조작된 게임에서 지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스템을 뚫을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족쇄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이 산산조각 난 아메리칸드림의 잔해가 여전히 자신의 고통받는 영혼에 불어넣을지 모르는 '미래를 위한 보장'이라는 환상에 대한 그 어떤 집착도 모두 다 버리다.
자본주의의 게임에서 낙오된 자에게 개인의 책임을 물 수 있는가.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약삭빠르거나 운이 좋은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건데 말이다. 평생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었는데 사회가 그들에게 의식주까지도 박탈하는 것이 그들의 잘못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은 경제는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경제는 게임입니다. 그 게임은 (오토바이, 컴퓨터, 텔레비전처럼) 필수적이지 않은 사물들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개인, 계속 생존하는 일, 보금자리를 갖는 일 ...... 이런 것들은 경제에 종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마존에서 일하는 노마드
아마존의 물류 센터는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에 물류량이 급증한다. 아마존은 이 시기에만 대량으로 고용할 인원을 찾는 데 난관을 겪었다. 아마존은 캠핑카에 사는 노마드를 고용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노마드를 고용하는 시스템을 "캠퍼포스"라 부르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워캠퍼(work + camper의 합성어)"로 일컫는다. 워캠퍼는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캠핑카를 타며 일할 곳을 찾다 보니 아마존 물류센터까지 흘러 들어간 것이다.
“캠퍼포스” 구직 공고물은 노년의 노마드를 공략하여 그들이 얼마나 윤리적인 노동자인지 칭송한다. 그들의 근면함이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된다며 말이다. 하지만 아마존이 노년층을 고용하는 이유는 그들을 쉽게 대량으로 고용하고 또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년층을 고용해서 얻는 세제 혜택도 꽤 쏠쏠하다.
우리 집단은 캠퍼포스 효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훈련관은 덧붙였다. 캠퍼포스 효과란 '할 수 있다' 정신의 아이젠하워 시대 노동 윤리가 더 젊고 더 미숙한 노동자들에게 옮아가는 것을 뜻했다.
그런 이점 말고도, 아마존은 연방 세액 공제 혜택을 받는데, 임금의 25퍼센트에서 40퍼센트에 이르는 금액이다. ... "아마존이 그렇게 느리고 비효율적인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건 근로 기회 세액 공제 때문이다."
아마존 물류 센터에서의 일은 신체적으로 버겁다. 워캠퍼들은 무려 10시간 동안 일하며, 교대 근무를 한다. 짧게는 2개월, 길게는 4개월 동안 물건의 바코드를 찍고 선반에 옮긴다. 이렇게만 보면 별로 힘들지 않은 일 같지만, 10시간 내내 앉지 못하고, 몇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스쿼트를 해야 한다 생각하면 만만치 않다. (물론 법정 휴게시간은 지키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노동 강도임은 틀림없다.) 젊은 사람도 견디기 힘든 노동 강도를 적게는 50대, 많게는 70대의 노년층이 교대 근무를 하며 버티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쓰러져 나가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 기업에 대항하기 어렵다. 모두 임시직이며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노마드이기 때문이다.
한편, 창고 노동자들에 대한 아마존의 대우는 2011년부터 뉴스 헤드라인들에 등장해왔다. ... 펜실베이니아 주 브라이니그스빌에 있는 아마존 창고에서는 실내 온다고 섭씨 37도를 넘는데도 도난을 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관리자들이 적재 구획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앰뷸런스를 밖에 세워 두고 노동자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지면 들것과 휠체어로 실어 나를 구급 의료 대원들을 대기시켜두었음이 취재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 일은 사람을 지치게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통로들을 왔다 갔다 걸어 다니는 것 말고도, 린다는 어림잡아 축구장 열세 개를 붙여놓은 크기인 창고를 가로지르며 몸을 굽히고, 일으켜 세우고, 쭈그려 앉고, 쭉 벋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찾아서
그럼에도 노마드들은 자신이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이며, 차를 타고 여행 다니는 삶이 자신이 선택이라 말한다. 경제의 밑바닥까지 침몰한 자들에게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제임스 로티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와중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끔찍하다" 생각한다. 일종의 자기기만이라 본 것이다.
그 격려 연설은 초현실적이지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결국,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란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대응 기제이며, 사실상 하나의 국가적인 오락이다. 작가인 제임스 로티는 대공황 시기 동안 미국을 여행하며 길 위로 내몰린 채 일자리를 찾게 된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1936년 "더 나은 삶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인터뷰 대상자 중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토록 확고부동하게 밝은 태도를 보여준 것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나는 2만 4,000킬로미터를 여행하는 동안, 환상에 중독된 이 미국적인 태도만큼 나를 경악시키고 혐오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도 마주치지 못했다."
과거의 노마드와 2021년의 노마드간의 차이는 있다. 현대의 노마드는 이 상황이 개선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단 노마드의 삶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어쩌면 사회가, 국가가 그들을 버린 상황에서 노마드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제임스 로티가 말한 것과 같이 자기 기만일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아 만들어낸 환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노마드 라이프의 가치는 그들이 이룬 공동체에 있다.
사실 자본주의의 끝판왕 미국은 그들을 "버린 패"로 취급한다. 그들의 불행은 그들만의 것이며, 국가에서 질 책임은 없다 생각한다. 젊은 정치인들이 노동 없이 연금으로만 사는 노년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 또한 이러한 국가적 의식에 궤를 같이 한다.
'너는 혼자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면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인 미국이 국민 개개인에게 지속적으로 불어넣는 메시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네가 처해 있는 현실이 어떻든, 네 삶이 어떤 모양새든, 그건 모두 너의 책임이다. 너의 불행은 너만의 불행이다. 너를 안전하게 지켜줄 사회안전망 같은 건 없다.' - 옮긴이의 말 중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지만 국민은 대체로 가난하며, 가난을 숭고하게 여기는 태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는 미국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받기 일수이다. 가난은 가난한 자만의 것이며 그들의 온전한 책임으로 여겨진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가난한 것이라는 태도는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나는 혐오감이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또한 미국의 능력주의 사회가 낳은 부작용을 꼬집는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 여기는 사회는 공동체라 할 수 없다.
미국은 지구 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가난하며, 가난한 미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싫어하도록 강요받는다...... 가난했으나 지극히 현명하고 고결했던 까닭에 권력과 부를 가진 누구보다도 존중받아 마땅했던 사람들에 관한 민간전승이 다른 모든 국가에는 있다. 가난한 미국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조롱하고, 자신보다 잘 사는 사람들을 예찬할 뿐이다.
그래서 노마드는 자본주의 규칙에서 탈피해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문제를 함께 해결한다. 그러니 그들이 각개전투로 자본주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노마드가 된 현재가 더 행복하다.
"우리는 여기 영원히 있는 게 아니다. 이 일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여행을 할 것이고, 이 지역을 탐험하며 (또는 가족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낼 것이고, 우리가 꿈꾸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위기의 시기에 기운을 내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놀랍고도 강렬한 기쁨"을 느끼면서 그렇게 한다. ... 다시 말해, 내가 몇 달째 인터뷰하고 있던 노마드들은 무력한 희생자들도, 걱정 없는 모험가들도 아니었다. 진실은 훨씬 더 미묘했다.
인간은 타고난 생존자이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기가 막히게 적응한다. 적응을 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량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생존자"라는 책은 본인의 생명을 지키는 생존 그 자체의 선을 설파한다. 노마드로 사는 것이 자기기만이며, 자기 기만이 생존 기제라면 나도 노마드로 사는 편을 택하겠다.
영화 "노매드랜드"
현대의 노마드를 위한 헌정사
영화의 주인공 펀은 책의 주인공인 린다 메이보다 처지가 좋다. 영화에서 펀은 미국 중산층 가정 두 곳이 함께 살기를 청한다. 반면 책에서 린다는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자녀의 집에 잠시 머물지만, 자녀 또한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아 오래 머물 수 없으며 오히려 자녀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영화는 노마드 라이프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펀은 자발적인 노마드이다. 그는 모든 요청을 거절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또한, 영화는 책과 달리 노동의 힘겨움을 중심에 놓지 않는다. 그보다는 생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마드가 그들의 정체성과 낭만 그리고 유대감을 찾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나아가 영화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영상미를 강조하는 이유는 노마드들이 추구하는 자연과 어우러진 삶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어쩌면 노마드의 삶의 고단함은 책이 맡아서 속속들이 들췄으니, 영화에서는 노마드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 노마드랜드 저자가 기사를 쓰고 있다고 말할 때, 한 노마드는 저자가 그들을 노숙자처럼 묘사할까 걱정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가진 낭만을 중요시하며, 경제적인 곤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어쩌면 노마드들에게 바치는 헌정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진정으로 느끼는 노마드 라이프는 책이 아닌 영화에 더 가까우리라.
기억에 남는 대사
펀은 언니네 집을 방문한다. 언니의 친구들이 2008년 경제 위기 때 집을 많이 사놓았으면 돈을 벌었다는 말에 펀은 화를 내며 반박한다. 이 장면은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상징적인 두 인물이 대치하는 내용으로 두 계층으로 나뉜 중산층의 현실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같은 중산층이었지만 경제 위기에 타격을 입고 빈곤층으로 하락한 자와 운이 좋게 영향을 받지 않고 중산층에 그대로 머문 자. 중산층에 머문 자의 고민은 하층민으로 떨어진 다른 중산층을 배려하지 않는다.
친구1: 요즘 경기가 좋아. 물가도 오르고... 2012년엔 대박 쳤지. 2008년에 집 왕창 사놨으면 큰돈 버는 건데. 부동산은 결국 오르게 돼 있어.
펀: 동의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평생 모은 돈에 빚까지 내가면서 무리하게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거. 난 이해가 안 돼요.
친구1: 펀, 우리 일을 너무 편협한 눈으로 보네.
펀: 편협하다고?
펀이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하다. 금융 위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연금과 집을 잃고 노마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 위험을 피한 사람들은 그 시기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칭하니, 금융 위기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은 사람들은 화가 날 수밖에.
이 모든 이야기는 미국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같은 자본주의 국가이자 미국보다 심각한 능력주의 사회인 대한민국도 이미 코로나 19로 인해 중산층이 양극화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는 다르게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문화가 대중적이지 않다. 앞으로 더 많은 중산층이 거주권에서 밀려난다면 어디에서 살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이미 밟고 있는 걸까?
부록: 관련 있는 책과 영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미국의 끝도 없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 능력주의는 결국 능력주의의 법칙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는 교만을, 패배한 사람에게는 열등감을 심어준다. 노마드들은 이러한 능력주의와 자본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미국의 모텔에서 거주하는 미혼모와 아이들의 이야기.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삶에 처해있는지는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법적인 규제만 들먹이는 국가의 매정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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