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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창고/☀️ 일상의 생각

재미없는 소설이 재미없는 이유

by 림뽀 202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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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이다. 서점에 들러서 '가여운 것들'이라는 소설을 샀다. 영화 예고편을 봤는데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 다 읽은 '향수'라는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 흐름을 타 소설을 더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소설에 푹 빠져서 앉은자리에서 반을 읽어버렸다. 

 

'향수' 전에 읽은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었는데 재미가 없어서 꾸역꾸역 읽었다. 그전에는 천명관의 '고래'를 읽었다. '고래'도 '향수'처럼 푹 빠져서 금세 읽었다.

 

 

내가 어떤 소설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향수'와 '고래'만 놓고 생각해 보면 자극적인 이야기가 취향일지도 모르지만, 두 소설은 자극적인 이야기라는 요소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 중심으로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소설이 주인공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꿈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여러 이야기가 이어진 것 같으면서도 각기 다른 흐름으로 진행된다. 기승전결이 분명하지 않아 이야기 구름 여러 개가 뿌옇게 머리 위를 떠다니는 느낌이다. 각각의 이야기를 따로 읽다 보면 재미있기도 한데, 이야기가 하나로 구성되지 않고 따로 있다 보니 흐름이 끊겨서 집중력을 금방 잃어버렸다. 매우 긴 시를 읽는 것 같았다. 의미를 담고 있을 텐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결론: 나는 해석을 따로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모호한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먼저 내 방식대로 해석이 가능하고, 이후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보며 비교해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엥,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석을 찾아보게 되는 작품은 나와 맞지 않는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내 방식대로라도 이야기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냥 작가가 묘사하는 공간과 인물에 따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내가 모호한 작품을 읽은 경험이 부족하거나 하루키만큼 똑똑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어쨌든 개인적으로 하루키 작품은 소설보다는 수필이 훨씬 재미있다.)

 

내가 또 싫어하는 소설의 '노잼 요소'는 1) 배경이나 사물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과 2) 주인공의 중심 서사에서 벗어난 주변 서사가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자세하게 삽입되는 것이다. 1)은 소설 '속죄'에서, 2)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깨달았다. 1)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지만 저자가 주인공의 저택을 자세하게 묘사할 때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는 '안나 카레니나'를 2권까지 밖에 읽지 못하게 만든 주범이다. 레빈과 키티의 연애 이야기는 재미있었던 반면 레빈이 자신의 농사 철학을 길게 늘여 말할 때마다 눈이 감겼다. 당시 톨스토이의 사상을 레빈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인데,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좋아하는 소설의 공통점을 얘기해 보자.

 

나는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 좋다. 유치하고 자극적이더라도 전개가 빠르고 흥미로워 다음 내용이 계속 궁금한 이야기 말이다. 고전이나 유명한 소설이 아니어도 앉은자리에서 다 읽고 싶은 이야기,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잊고 푹 빠지는 소설을 읽고 싶다. (ex.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 그러나 등장인물이 과하게 비현실적이거나 그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으면 재미가 없다. 인물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것은 작가의 중요한 자질이다. 

 

범죄자나 정신병이 있는 인물 등 불완전한 인간을 다룬 이야기도 좋아한다.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미친 사람도 이야기를 통해 만나면 다르다. 그 사람이 그렇게 된,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자세하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그 사람이 지닌 악이 아마도 비교적 낮은 순도로, 발현되지 않은 채로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일상을 살면서 이야기를 들어볼 일이 없거나 공감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감할 기회를 주는 소설이 좋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담은 소설을 좋아한다. (박완서의 소설과 '패싱') 우리나라 소설이 아니어도 불합리한 사회에 관한 이야기면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꼭 특별한 메시지가 없어도 내가 지금 현재에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해보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라면 재미있다.

 

<결론: 재미있는 story-telling이 중요하다. 공감의 경험을 넓혀주는 이야기가 좋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 내 취향을 특정하고 그 안에서만 독서를 이어가선 안 된다.

 

개인이 처한 상황과 경험, 나이, 성별 등에 따라 공감의 범위가 다르므로 내가 별로라고 생각한 작품이 누군가에겐 좋은 작품일 수도 있다. 공감의 폭을 넓히려면 오히려 내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땐 여성 작가의 페미니즘 소설을 주로 읽었다. 페미니즘 소설이 공감하기 쉽긴 하지만 그런 소설이라고 다 좋은 작품은 아니었다. 이후 독서의 폭을 넓히니 생각의 범위도 확장되었다. 남자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다 졸작은 아니라는 것도, 남성 저자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 글에서 말한 '노잼 요소'가 있는 책이더라도 더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배타적인 읽기 습관으로는 나를 확장할 수 없다. 정말 별로인 작품도 새로운 메시지를 던질 때가 있다. 비슷한 유형을 책을 읽으면 같은 생각만 강화할 뿐이다. 

 

<결론: 다양한 작품에 열린 태도로 다가가자.>

 

책 향수 표지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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