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맞아 소설 한 권과 관련된 영화를 흡수했다.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라는 책과 "카포티"라는 영화이다.
"인 콜드 블러드"는 실제 사건을 다룬 논픽션 소설이다. 논픽션 소설은 배경이나 스토리라인은 실제 사건과 동일하지만 인물의 마음이나 감정, 대화의 일부 세부 사항은 허구인 소설을 뜻한다. "인 콜드 블러드"를 처음 읽을 때는 논픽션 소설이 무엇인지 몰라 작가가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중반쯤 실제 사건인가 싶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 있던 사건을 다룬 소설이더라.
1959년 캔자스에 한 평화로운 마을에서 4인 가족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순식간에 모든 식구가 살해당한 클러터 가족은 부유하지만 겸손한 시골 마을의 명망 있는 집이었다. 마을 내에서 클러터 가족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인 콜드 블러드"는 다른 범죄 소설과 다르게 처음부터 범인을 밝히고 범인과 희생자의 이야기를 병렬로 배치한다. 다수의 범죄 소설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기 위해 독자가 여러 인물을 의심하고 추리하게 만드는데, "인 콜드 블러드"는 그런 장치 없이도 흡입력 있다.
범인은 마을 외부인인 20대 후반의 젊은이 두 명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감옥을 몇 번 들락거린 이력이 있었다. "딕"이라는 범인은 감옥에서 다른 재소자로부터 부유한 전 고용주, 클러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클러터씨 집에 돈이 많이 든 금고가 있다는 말을 듣고 딕은 살인강도를 계획한다. 딕의 아이디어는 또 다른 범인인 "페리"의 살인으로 실현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딕과 페리는 클러터 가족의 집에 침입했지만 금고를 찾지 못한다. 클러터 씨가 현금보다 수표를 사용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훔칠 수 있는 현금도 거의 없었다. 딕과 페리는 일가족을 죽이지 않아도 됐다. 금고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나마 훔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그대로 도망갔으면 될 일이다. 클러터 가족이 그들의 얼굴을 목격했지만 꽁꽁 숨는다면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바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클러터 가족 모두를 죽이고 떠난다.
페리라는 범인은 피해자에게 친절하게 대한 후 잔인하게 살해한다.
피해자들을 베개 위에 눕히고,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도왔다. 딕이 클러터씨의 딸을 성폭행하지 못하게 막기까지 했으면서 갑자기 시작된 충동으로 인해 이들 모두를 살해한다. 페리는 정신을 차려보니 클러터씨의 목이 이미 칼로 그어져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클러터씨를 공격한 당시 잠시 의식을 잃었다고 말이다.
페리의 증언은 이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나는 살인자다"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어느 살인자의 말과 일치한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눈앞에 사람이 죽어있었다고. 자신이 죽인지도 몰랐다고. 살인 당시 의식을 잃는 경험은 "인 콜드 블러드"에서 일종의 정신분열증이라고 분석한다.
논문에 따르면 이 사람들 스스로도 자기들이 거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왜 죽였는지 전혀 모르고 당황하고 있으며, 매 경우 살인자는 꿈처럼 토막토막 연결되지 않는 환각 상태에 빠져들었다가 깨어보니 자기가 희생자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갑작스레 발견"했다는 것이다.
(...)
환자들 중 둘은 폭력이나 이상 행동을 보일 때 환각 상태에 가까운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인 것을 보고되었으며 다른 두 사람은 정도는 덜하지만, 기억이 잘 연결되지 않는 기억 상실증에 가까운 증세를 보인 적이 있다는 사실이 보고서에 적혀 있다. 실제로 폭력을 행하는 순간에는 마치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처럼 종종 자아가 분리되거나 고립되는 느낌을 받는다.
<인 콜드 블러드> p.454-455
페리에게 살인 충동이 격발된 이유는 피해자에게 있지 않았다.
페리는 피해자에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클러터 가족 모두를 점잖고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살인의 원인은 가해자 안에 있었다. 약간의 정신 착란 증세, 충동성에 과한 자존심,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마음이 더해져 살인을 저질렀다.
그런 무의미한 살인들이 일어나면, 이것은 살인자 내부에서 긴장과 분열이 일정 기간 동안 증가한 끝에 나온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긴장과 분열은 살인자가 희생자를 접촉하기 전에 이미 일어난 것이다.
<인 콜드 블러드> p.457
클러터 가족의 집에 금고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딕과 페리는 다툰다. 자존심 싸움이었다. 페리는 딕에게 '나는 너처럼 겁쟁이가 아니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칼을 집어든다. 마음속으로는 딕이 자신을 말려주길 바라면서. 딕이 자신을 말리면 딕이 겁쟁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딕은 페리를 말리지 않는다. 그렇게 페리는 급작스럽게 칼로 클러터씨의 목을 그어버리고, 살인이 시작된 순간 다른 목격자는 살려둘 수 없게 되었다. 두 시한폭탄의 조합이 악의 방향으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인 콜드 블러드"를 읽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고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어머니가 쓴 책이다. 딕과 페리는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범인 두 남자아이가 그대로 10살을 더 먹은 모습 같았다. 두 사건의 범인 모두 더 잔인하고 공격적인 한 사람과 자존감은 낮지만 자존심이 너무 강하며 예민하고 감수성이 뛰어나고 우울하며 충동적인 다른 한 명의 조합이었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인 콜드 블러드"의 딕, 컬럼바인 사건의 에릭이고 후자는 "인 콜드 블러드"의 페리, 컬럼바인 사건의 딜런이다.)
두 책 모두 저자가 더 공감하는 범인을 덜 적극적이고 선동당하기 쉬운, 마음이 여린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 아닐까 의심되었다.
"인 콜드 블러드"의 저자 트루먼 카포티는 페리를 안타깝게 여긴다. 카포티의 이런 모습은 영화 "카포티"에 잘 표현되어 있다. 카포티는 페리를 자주 찾고 그가 자신과 비슷한 불운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사실로 인해 그를 돕고 싶어 한다. "인 콜드 블러드"는 딕보다 페리의 편에 유리하게 쓰였다. 페리의 이야기를 더 길게 담고 있기 때문에 독자가 페리의 입장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을 딕의 부모가 썼다면 페리보단 딕에게 유리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딕의 부모는 아들의 살인 소식을 듣고 우리 아들은 '진짜 범인'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페리가 진짜 범인이고 딕은 페리에게 선동된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저자 또한 자신의 아들인 딜런은 소심하고 선동당하기 쉬운 아이였고 다른 범인인 에릭이 더 공격적인 성향의 아이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딜런이 에릭의 눈에 띄지 않게 일부 학생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준 모습 등 딜런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책에 담는다.
나와 가까운 사람은 진심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테다.
그 사람을 오랜 시간 지켜보며 좋은 모습도 봤을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과거의 좋은 경험에 눈에 가려져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에게 대입하여 생각해 보자. 갑자기 동생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첫 반응은 어떨까. 아마 믿지 못할 것이다. 증거가 발견되어도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백을 하면 빼도 박도 못하게 사실이니 사건의 진위는 의심하지 않겠지만 공범이 있을 경우 그 사람 때문에 착한 아이가 선동당한 것이라 생각하고 공범이 없을 경우 피해자 탓을 했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의 일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내 마음속에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범죄자에 관한 책은 믿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페리나 딜런이 더 적극적인 범인이었을지라도 그들에게 연민을 갖고 있는 저자는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어 사실을 왜곡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와 범인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범인에게 오랜 시간 관심을 갖고 그의 입장을 헤아린 작가라면 범인에게 연민을 가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범죄자에게 갖는 연민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카포티가 페리에게 느낀 연민은 작품의 객관성은 해쳤을지 몰라도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줬다. 카포티는 그가 느낀 감정으로 인해 팩트만 담고 있는 기사 같은 소설이 아닌 더 창의적이고 감상적인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범죄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지만 새롭다. "인 콜드 블러드"와 같은 책을 통해 기사와 사진으로만 사건을 접했을 때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나와 매우 다른 타인에 대한 포용력을 넓힐 수 있다. 나아가 나에게도 범죄자가 갖고 있는 나쁜 심리적 특성(과도한 자존심, 남을 탓하는 마음, 실수를 인정하지 않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쁜 사람을 불쌍하게 여겼다는 것이 조금 찝찝하긴 하다. 여러 모순적인 감정과 생각할 거리를 야기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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