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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창고/☀️ 일상의 생각

어린이 셋과 축구한 날의 일기

by 림뽀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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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는 친구를 만들기에 좋다. 같이 풋살 게임 한 번 하면 카페에서 세 번 만날 때보다 빨리 친해진다. 20대 후반 성인에게도 마음을 열기 좋은 도구이니 아이들은 오죽할까. 

 

지난 9월 30일, 동생을 설득해 광장에 축구 연습을 하러 갔다. 동생은 움직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옷을 사주겠다고 하니 그제야 응했다. 광장까지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데, 그것도 힘들다고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한 시간 정도만 참으면 옷을 살 수 있으니까 참은 것 같다.

 

동생을 꼬셔서 패스 연습도 하고, 슛 연습도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광장에 세 어린이가 씽씽이를 타며 등장했다. 그들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씽씽이를 타는 속도와 소리 때문이었다. 축구공에 집중하느라 보지는 못했지만, 대지를 가르는 바퀴의 소리만으로 아이들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중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한 어린이가 "나도 공"이란 말로 나에게 패스를 요구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패스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린이의 당당한 말투는 내가 당연히 자신에게 공을 줄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친절한 자아를 불러내 아이에게 부드러운 말투와 함께 공을 패스해주었다. "응, 공 여기~"

 

귀여운 어린이들과 축구를 했다

 

그렇게 총 세 명의 아이와 축구를 했다. 두 아이는 남매였고, 한 아이는 외동아들이었다. 다들 공을 세게 차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아직 몸이 다 발달하지 않아 공을 세게 차기 힘들어했다. 남매의 누나이자, 나에게 먼저 공을 주길 요구한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을 찰 수 없자 삐졌다. 씩씩거리며 씽씽이를 타고 멀리 가버렸다. 그래서 한동안은 두 남자아이와 패스 놀이를 했다. 

 

남매의 남동생은 적극적인 성격이었고, 외동인 아이는 소심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내가 소심한 어린이에게 패스를 해주면 그 어린이가 공을 받기 전에 적극적인 어린이가 뺏었다. 나는 둘이 싸울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오히려 서로 뺏고 뺏기는 놀이를 좋아하는 듯했다. 적극적인 아이가 공을 가져가면 소심한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다.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얼굴을 보니 웃고 있었다. 재미있어서 흥분한 것뿐이었다. 괜히 걱정했다.

 

적극적인 남매는 나에게 공을 달라고 직접 요구했다. "저 공 주세요! 세게 차주세요!" 반면 소심한 어린이는 나에게 패스를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공을 가지고 있으면, "민재 언제 줄 거예요?"라며 공손하고 간접적으로 자신에게 공을 달라고 요청했다. 6살, 7살인 아이들조차 성격과 행동이 극과 극이란 사실이 신기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솔직하다. 자신의 기질을 나쁘다 생각하지 않고, 숨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참 귀여웠다. 소심한 어린이는 내 동생과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동생은 감성이 섬세해서 아이에게 잘 맞춰준다.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들의 아버지로 보이는 두 남성이 나타났다. 우리에게 감사하단 말을 건네며 아이들에게 집에 가자고 했다. 아이들이 잠깐 만난 우리에게 정이 들었는지 아쉬움을 표현했다. 소심한 어린이는 로블록스 게임에 눈이 팔려있다가 아버지가 집에 가자고 하니 아쉬웠는지 축구를 더 해야겠다고 했다. 두 남매는 통성명을 시도했다. "이름이 뭐예요? 몇 살이에요? 어디 살아요?" 내 나이가 29살이라고 했는데,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모르겠다. 나이 많은 친구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내일도 나와서 놀자고 했다. 소심한 어린이는 내 동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 손에 끌려가면서도 눈은 동생에게 향해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쟤 이름이 뭐야? 쟤 이름이 뭐야?" 금방 잊을 것 같아 불안했나 보다.

 

여자 어린이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냐고 물었다. 처음에 들었던 대로 불러주니, 얼굴에서 웃음꽃이 활짝 폈다. 활짝 웃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로 환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 사람을 그토록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니! 감동적이었다. 공놀이할 때는 계속 삐져서 그렇게 환하게 웃을 줄 몰랐기에 어린이의 웃음꽃이 더 놀라웠나 보다. 

 

내가 그렇게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단 사실이 생각보다 더 뿌듯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일로 상대방을 그토록 기쁘게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이름만 불러줘도 행복하다.

 

아이들과 놀아주기로 결심해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마음도 따뜻해졌고 재미도 있었는데 뿌듯했다. 별생각 없이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 나의 삶의 단계에선 주변에 아이가 없다. 아이를 만날 기회가 없던 나에게 이 날의 일은 드물게 발생하는 운 좋은 사건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사건은 만남에서 발생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나의 가치관이 성립되고 이야기가 생긴다. 혼자 앉아서 생각하고 같은 자리에만 있는 나에게 평소에 만나지 않던 사람들이 주는 파괴는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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