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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창고/☀️ 일상의 생각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by 림뽀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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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2시까지 밀리의 서재에서 모범피님의 <언제까지 이따위로 살텐가>를 읽었다. 조금만 읽다 잘 생각이었는데, 웬걸 나와 너무 비슷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닌가.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따위로 살 텐가? - 교보문고

“공감과 위로를 받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책입니다!” 먼저 읽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종이책으로 재탄생 2021년 전자책으로 출간 후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에서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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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하는 일이 비슷하다. 나는 서비스 기획자이고(PM) 모범피 님도 IT 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자와 UX 디자이너로 일했다. 평생 모범생으로 살아왔지만, 한 편으로는 일반적인 직장인의 굴레를 벗어나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비슷했다. 좋아하는 창작물의 형태는 약간 다르다. 나는 글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림도 그만큼이나 좋아한다. 모범피 님은 글을 다른 미디어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모습은 또 비슷했다. 모범피 님이 디제잉을 배우는 걸 보고 고등학교 때 한참 미디(MIDI)에 빠져 살 때가 생각났다.

모범피와 나의 고민은 이러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 해서 했고, 대기업을 가면 좋다고 해서 대기업 입사를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괜찮은 회사에서 나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을까? 나는 남들이 맞다고 하는 길을 갔을 뿐, 한 번도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외면해왔다.

다수가 가는 길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은 절충안이 서비스 기획이 아닐까 싶다. 디자이너나 음악가 등의 창조적인 직업은 사회초년생일 때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려우니까. 현실과 타협한 셈이다. 꽤 합리적인 선택이면서도 100% 만족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기획자는 무엇을 창조하는 일을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것을 대신 만들어주어야 한다. 게다가 창조적인 관점보다는 사업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어떤 선택이 더 좋은 성과를 낳을지 고민해야 하니까. 이런 일은 창조적인 직업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재미가 없는 일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문제 파악은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 <언제까지 이따위로 살텐가>에서 모범피 님이 자신을 분석한 방법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1. 좋아하는 것 (흥미를 느꼈던 것) : 나는 무엇을 할 때 순수하게 기쁜가. 무엇을 할 때 설레고 의욕이 샘솟는가.

1)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대학 때 생활디자인학과를 복수 전공한 이유이다. 만들기 위한 도구는 그림(이미지), 글, 영상, 음악 등 여러 가지를 아우른다. 결과물 공유를 즐긴다.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예쁜 것들과 그림 그리기를 너무 좋아했다. 예쁜 것이라고 하면, 귀여운 문구류, 예쁜 공주 인형, 예쁜 책 등이 있다. 중학교 때까지 미술 수업을 가장 좋아했다. 그림일기를 쓰면 일기보다는 그림 그리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잘한다는 칭찬도 꽤 들었다.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동생과 셀프 전시회를 열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도 교과서와 공책에 낙서를 어마어마하게 했다. 집중이 안 되면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교 때는 MIDI를 배웠다. 음악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2010년 당시 사운드클라우드에 만든 노래를 업로드하고 뿌듯했다. 2016년쯤 대학교 4학년 때는 유튜브에 뷰티 콘텐츠를 올렸다. 구독자 2,000명을 달성했다. 뷰티를 좋아하는 것보단 예쁜 영상 만들기가 재미있었다. 사운드클라우드와 유튜브가 지금보다 작을 때 올렸으니까 나름 얼리어답터였다. 새로운 도전을 잘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고 나서부터는 브런치와 지금 이 블로그를 운영한다. 나름대로 꾸준히 사이드 프로젝트로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2) 나는 분석을 좋아한다.
어떤 현상과 반응이 왜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 그래서 서비스 이용 로그를 분석하는 일도 재미있다. 대학원 때도 실험 설계과 수행보다는 결과 분석이 더 재미있었다. 수치를 분석한 결과에 대한 논리적인 토론도 좋아한다.

2. 잘하는 것 : 남들보다 잘하는 나만의 것이 무엇인가.

1) 문과 중에서는 이과적 사고를 잘하는 편이다. 대학 때 성적이 잘 나온 수업은 파이썬 손 코딩 수업과 영어학이었다. 영문학 수업은 재미도 없었고 성적도 안 좋았다. 영어학 과목 중 morphology (형태론) 수업에서 1등했던 것이 아직도 인상 깊다. 영어 단어의 어원과 단어가 형성되는 순서를 익히는 수업이었다. 파이썬이나 영어학 모두 공통 규칙만 외우면 적용해서 풀면 되니까 많은 것을 외우길 싫어하는 나에게 잘 맞았다. 영어사회심리학과 셰익스피어 같은 과목의 시험은 서술형이었고, 규칙만 외우면 되는 게 아니라 책의 문장을 통째로 외워야 했다. 나는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시험을 더 잘 봤다. 어쩌면 게을러서 그럴지도 모른다.

2) 무언가를 만든 후, 나대기를 잘했다. 보통의 실력인데 상위 10%의 실력이라고 착각하고 나댔던 것 같다. 음악을 만든 후에 별 관심도 없는 친구들에게 엄청 들려줬다. 내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내 음악으로 반 친구들과 공연도 하고, 체육 대회 때 반 응원 음악도 만들었다.

3) 대충이라도 시작하기를 잘했다. 앞으로 만들 결과물의 퀄리티에 크게 개의치 않고 일단 시작하기를 잘했다. 일단 시작은 잘 하니까 이상한 거라도, 결과물이 만들어지긴 했다.

4) 향상심: 자기 갱신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반복 학습에 몰입하기도 잘했다. 요즘 하는 풋살도 시간만 되면 한 자리에서 슛 연습만 100번도 할 수 있다. 개선되고 있다는 느낌만 있으면 잘 안 질린다.

5) 경쟁심: 이기고 싶은 욕구가 크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계주로 나갔다. 피구를 정말 열심히 했고 체육 시간도 좋아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기기 위해서였다.

6) 언어 학습이 빠른 편이었다. 조기 교육 덕분에 영어를 잘했다. 엄마 말로는 어릴 때부터 글을 일찍 깨우치고 잘 썼다고 한다. 엄마가 나에게 언어에 재능이 있다고 말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글쓰기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말하기에는 재능이 없다. 나는 임기응변에 능하지 않다. 잘 말하기까지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나를 정의하기

그래서 나는,
1.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2. 창작 계통의 일을 할 때 기쁨을 느끼고 (모범피 님 책의 표현을 가져왔다.)
3.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고, 규칙(패턴)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핵심 역량인 사람이다.

도대체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이 적성에 맞을까? 나는 일단 글/그림/영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다. 1, 2번만 봤을 때는 예술가나 디자이너를 해야 될 것 같지만, 3번은 또 다른 역량이다. 3번 역량이 창작 계통의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피상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1, 2번은 우뇌의 일, 3번은 좌뇌의 일로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서로 맞지 않는 불운한 사람인 걸까.

좌뇌로 SF 소설을 쓰는 테드 창과 같은 훌륭한 작가도 존재한다. 어쩌면 예술의 영역에서는 나의 좌뇌 성향이 나만의 독특한 색깔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공학의 세상에서는 나의 예술가적 성향이 강점이 될 수 있다. 가끔은 내가 완벽히 예술가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벽히 공학적인 사람도 아닌 게 불편하다. 한 분야를 깊게 파지 않아 전문성이 떨어지니까. 하지만 인생은 길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 일들을 놓지 않고 계속 파다 보면 양쪽에서 터널을 뚫는 것처럼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밝은 미래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 그 자체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날카로운 생각이나 폭 넓은 input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 젊고, 다양한 경험을 해볼 때이다. 아직은 방향을 하나로만 정하지 말고 모두 다 조금씩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림 그리기를 작년 12월 이후로 멈췄는데, 다시 그려야겠다. 이번엔 한 가지 주제로 조금 더 꾸준히 해야지. 그리고 글쓰기를 배워야겠다.



<모범피 님의 브런치>

모범피의 브런치

에세이스트 | 모범생이 아니고 싶은 모범생. 불치의 사춘기를 앓으며 글 쓰고 디제잉하고 사색을 즐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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