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비스 기획/🌱 기획 일기

내가 일하는 이유

by 림뽀 2022. 3. 12.
반응형

내가 일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물론 첫 번째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만약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돈이 생긴다면 당장 일을 그만둘 것인가? 나는 일을 곧바로 그만두지 않을 것 같다. 내 회사를 만들고, 사장으로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회사에서 배울 것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평일의 1/3 동안 일을 한다. 그 모든 시간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하면 흘러간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생존 욕구가 채워졌을 때 철학적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지금 나에겐 꼭 필요한 생각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왜 인생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해서 일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논리가 필요하다.


1. 원인이 되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for fun! 😝)

근본적으로 놀이를 하는 이유와 같다.

 

인간이 그토록 열심히 노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의 심리학자 카를 그로스는 "원인이 되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본인의 팔을 일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면 항상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팔을 동그랗게 움직이면, 언제나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다!

 

내가 동그라미를 그리다니, 눈에 보이는 저 동그라미의 원인이 나의 움직임이라니. 감격을 금치 못한다. 동그라미의 원인이 나이므로,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별도의 실체이다. 저 동그라미는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원인이 되는 즐거움"은 일과 놀이의 공통점이다. 일도 놀이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목표한다. (구체적인 목표 지점은 다를지언정, 어떤 결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같다.) 게다가 일을 통해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켰을 때, 이는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까지 작용할 수 있다. 즉, 나의 자존감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1901년에 이미 독일의 심리학자 카를 그로스는 어린 아기들이 세상에서 예측 가능한 영향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처음 알게 될 때 아주 크게 기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영향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어떤 혜택을 준다고 해석될 수 있는지와는 대체로 상관없다. 가령 자기 팔을 아무렇게나 움직여 연필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같은 방식으로 움직임으로써 동일한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지극한 기쁨의 표현이 따라 나온다. 그로스는 “원인이 되는 즐거움(the pleasure of being the cause)”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이것이 놀이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오직 행사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권력의 행사였다. (...)

아이들은 대개 ‘자신’이 현상을 일어나게 만든 원인임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이 존재하며 주위 세계와 구분되는 별도의 실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세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능력이 없는 인간은 존재하기를 멈춘다.

<불쉿 잡 p.154 - 데이비드 그레이버>

 

2.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을 위해

내가 세상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은 중요하다. 나의 믿음만큼 나에게 능력이 없더라도 말이다. 인간에게 믿음이 없다면 살아갈 힘을 잃고 무력감을 느낀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멈춘다.

 

내가 세상에 단 하나의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믿을 때 사람은 자신이 타고난 성질에만 집중한다. 내가 충분히 예쁜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똑똑한가?라는 고민은 무력감과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내가 20대 중반까지 고민해봐서 안다. 열등감 때문이 맞다.) 인간이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스스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일이 놀이와 마찬가지로 원인이 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일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을 위해 필요하다. 그 믿음은 앞으로의 삶에서 여러 일을 해결하고 달성하기 위한 힘을 줄 것이다.

 

신경증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무력감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나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고 어떤 일도 착수할 수 없으며 내 의지로는 외부 세계나 나 자신의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고, 아무도 나를 대우해주지 않으며 모두가 없는 사람 취급한다.

(...) 그는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에 타고난 성질에 온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늘 자신이 타인의 마음을 얻을 만큼 똑똑한지, 예쁜지, 착한지 의문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질문은 항상 똑같다. “난 똑똑할까? 예쁠까? 안 똑똑할까? 안 예쁠까?”
그것을 알아내야 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그에게는 없기 때문에다. 그 결과는 보통 깊은 열등감이다. 사랑과 호감을 얻는 데 필요한 성질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열등감이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p.157~160 - 에리히 프롬>

 

3. 긍지를 느끼기 위해 (Pride! 💪)

게다가 내가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면, 아이들조차도 자신의 행동에 긍지를 느낄 수 있다. 긍지는 자존감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감정이다. 내가 실제로 이 세상이 의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뿌듯한 감정이다.

 

박완서 작가님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똥을 누는 일에 대해 자세히 공유했다. 배설로 긍지까지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내 똥이 작물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뒷간에서는 잘생긴 똥을 많이 누는 게 수였다.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땅으로 돌아가 오이 호박이 주렁주렁 열게 하고, 수박과 참외의 단물을 오르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본능적인 배설의 기쁨뿐 아니라 유익한 것을 생산하고 있다는 긍지까지 맛볼 수가 있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p.29 - 박완서>

 

Why do I work?

 

반응형

댓글